큐티묵상 나눔

2/20 다시 심는 겨자씨

능금이 2018. 2. 20. 08:17

(마17:14~27)

본문요약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들의 아버지가 예수께 와서

제자들은 못고쳤다고 고쳐달라고 청하니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시며 고쳐주십니다.

 

조용히 예수께 자기들은 왜 못 고친거냐고 묻자

너희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도 있다고 하시고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을 이르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합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세를 내라고 하는 말에

베드로에게 명하여 낚시를 해서

먼저 잡힌 고기의 입에서 나온 돈으로

세금을 치를 것을 명하십니다.

 

묵상과기도

삼년 반이 지나도록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이지만

예수가 안 계시니 간질병 들리게 한 귀신 하나도

쫒아내지 못하더라고 고발을 당하고

망신과 질책을 겪었습니다.

 

꾸짖는 말씀 한 마디로 즉시 고쳐주신 예수님 앞에

제자들이 조용히 나아와 그 이유를 물으니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하시고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도 있다 하십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 산을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은

겨자씨를 땅에 심고나서야 나타날 결과인 것 같습니다.

 

작은 겨자씨라도 땅에 심어야 싹을 틔우고 자라서

새가 깃들일만큼의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씨앗은 땅에 심어도 생명이 없기 때문에

싹을 틔울 수 조차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이 간질병 귀신을 쫒아내려 한 제자들처럼

예수 씨의 생명이 없는 믿음으로 사는 인생은

남겨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곧 일어날 십자가 사건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매우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귀에는 죽임을 당한다는 말만 들려 왔습니다.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같이 하셨는데도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믿음은 겨자씨보다도 작아서

살아날거라는 말씀은 귀에 들려지지 않으니

근심만 합니다.

 

예수를 아직 못만났다고 고백하였지만

새벽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스스로 일어나

큐티를 하자고 마주 앉는 남편에게서

그 순종이 겨자씨만큼한 믿음으로 보입니다.

 

비록 말씀을 나누면서 서로 듣기 싫은 말도 오가고 할지라도

말씀 앞에 귀 기울이려고 하는 중심이 있기에

그나마 자기 죄들을 보며 인정하고

서로 변하여 가려고 힘씁니다.

 

아내를 발로차서 구덩이로 내던지던 사람이

말씀앞에 앉아 귀를 기울일만큼 자란

믿음이 되어있음을 보니 나무만큼 자란 겨자씨가

그 속에도 살아있었음을 보고

감사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책망을 들을지라도, 부끄러울지라도, 기가 죽었을지라도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앞에 나아가 물을 때에

겨자씨를 비유한 말씀이라도 듣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시라도 자기 제자의 몫까지

한 세겔의 세금을 내심처럼 우리집도

겨자씨만한 믿음이 자라 나무가 되어가는 것을 보려면

내야 할 세금이 많았기에 물질적으로는 남겨진 것이 없어도

믿음의 울타리에 들어와 날마다 자라가고 있는

믿음의 나무 몇 그루들이 우리집에 있으니

실상은 부요한자가 되게 하십니다.

 

내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무엇이 바뀌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죽으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또 한 알갱이의 작은 겨자씨를 심습니다.

 

사흘 반 후면 일으켜질 것입니다.

 

내 집의 사흘반의 흑암이 곧 걷혀질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