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2:23~33)
본문요약
사두개인들의 입을 막으셨다하는 소리를 듣고 바리새인들이 다시 모여 율법중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물으며 또 시험합니다. 예수님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게 첫째 계명이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게 둘 째 계명이라고 하시고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이냐고 되물으시며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한 것에 대해 다시는 대답 할 말이 없도록 만드시니 그날부터는 감히 묻는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묵상과기도
모세가 전하여준 문자적인 율법에 갇혀 누구보다 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알고 잘 지키며 살고 있다고 굳게 믿는 바리새인과 율법사들, 사두개인들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자신보다 훨씬 후대에 태어나실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칭했던 의미를 결코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도 성령에 감동된바가 아니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없게 하신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렛이란 초라한 동네에서 요셉의 아들이라는 육신을 입고 자신들과 같은 성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줄 것으로 믿고 그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야와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라고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다윗이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감동 때문이었기에 외식하는자요 부활을 믿지 않는 그들의 영적 눈은 열릴 수 없는게 당연하였고 메시야는 결국 유대민족의 가지가 꺽여진 생명나무에 이방인들이 접붙여진 은혜의 시대가 되어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같은 믿음이 내 안에도 있었으나 성령께서 제 안에 오셔서 눈을 열어주셨기에 복음이 들려지고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나를 주관하고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이 실체임을 더욱 깨달아갑니다.
나의 생각이 먼저 움직여서 내 손과 발이 움직이고 있음인데 나의 생각보다 더 높은 차원의 성령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완전한 주인이 되어 있을때에야 내가 바뀌어지고 나의 주되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온유의 그릇이 될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끝없이 시험하고 대적했던 그들처럼 그동안 저도 내 생각의 틀과 자아에 갇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내게서 가장 큰 우상이 나의 생각이었음을 깊이 자각합니다.
작은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이런자들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네가 주인되어 큰 자가 되어있으면어찌 천국을 소유하겠느냐고 하십니다!
주님!
제 생각을 비워주소서!
성령님만이 저의 생각을 사로잡아주시고 내 주인되어 내안에사십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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