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금이의 방/* 능금이수필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께!

능금이 2013. 8. 29. 11:19

어머니!
비가 오네요.
그 무덥고  뜨겁던 여름이 결국엔 이렇게 물러가고
가을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요즘은 세월이  마치 미친바람이 불듯이 너무나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봄 과 가을의 몫을 다 빼앗아서 이렇게 여름은 너무 오래 뜨겁고 겨울은 너무 오래 춥고
곳곳에서 지진이 나고, 전쟁이 나고, 남을 죽이고, 스스로 죽고,
정말 이해 하지 못할 무섭고 경악할 일들이 날마다 쉴새 없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
참으로 어머니가 가 계신 그곳에 저도 속히 가고 싶어지는 세월들입니다.

어머니께 인사드리러 가서 처음 뵙던 날
짐짓 제게 시어머니의 근엄하고 품위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려고 하셨던것이 기억나면
지금도 풋~ 하고 웃음이 나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시집와서 어머니 슬하에 살면서 가끔 밉지 않은 육두문자가 어머니 입에서 툭툭  튀어 나올 때면 
며느리 될 저에게 근엄한 모습을 보이시려고 그날 참 버거우셨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때면 
어느덧 이제는 저도 어머니만큼 지나온 세월을 살아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혼살림이라고 멀리 떨어져 살고 있을 때 어느 더운 여름날
어머니는 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편지 한 통을 보내주셨지요.
거의 한 장을 삐뚤빼뚤 갈매기가 날아가는듯한 글씨체로 
연필로 침 묻혀 가며 꾹꾹 눌러가며 꽉 채워 쓰신 편지가 
저를 향한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애틋함의 고백인줄을 

철부지 새댁이었던 저는 그때는 몰랐었습니다.

어린 며느리를 서울로 살림 내어 보내시고 더운 여름날에 보내주신 편지를 
그동안 이리저리 이사 다니느라 그만 아쉽게도 잃어 버렸지만
소리나는 대로 가득 쓰여진 그 말씀중에 절대 잊어버려지지 않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가야 악갑다고 씨지말고 남은 음식은 꼭 내삐리그래이"   

지금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무척이나 덥던 여름 날 그때는 다들 냉장고도 없이 살아가던 때라 
남은 음식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먹다가 배탈이라도 날까봐 염려하셔서 

당부하고 당부하셨던 말씀 한마디!
해마다 더운 여름이 돌아오고 음식이 남은 접시를  들고  먹어야하나 버려야하나 갈등할때면 
꼭 어머니의 그 당부 말씀이  제 귓가에 선연히 들려 옵니다.

삼동서지간에 어머니 당신께서만 야학에서 언문을 깨우치셨다고 

은근히 자랑삼아 몇번이나 말씀하시던 어머니.

"느그 숙모는 머리가 영 안 돌아 가는기라~ 
 내는 그래도 끝까지  배워서 까막눈은 면했다 아이가~하하하! "

며칠전 애비에게 어머니가 어찌 그토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글자를 깨우치셨는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고향 땅에 농사지어 붙여먹을 땅 한 뙈기가 없어서 오 남매의 맏이셨던 아버님이 

돈을 벌어 오시겠다고 배를 타고 외국을 다니시느라 일년이면 한 두번 뵐까 말까 하며 

독수공방 지내셨던 어머니가 아버님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편지밖에 없었기에 

그토록 기를 쓰고 글자를 깨우치셨다고....

" 아부지한테 연에 편지 쓰실라꼬 그렇게 기를 쓰고 글자를 배우셨던기라~ 하하하!"
" 아하!! 목적이 있으시니깐 득도를 하셨었구만요~ "
" 그렇지!~ 숙모님은 몇번 다니시다가 재미 없으시니깐 포기를 하셨거던...

  삼촌과 같이 사셨으니깐 ....하하하~"

남자같이 불뚝거리시며 털털한 대장부같은 성격이셨던 어머님이 그때 아버님께 

어떤 글로 편지를 보내시곤 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들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집니다.

올해의 여름도 징그럽게 더웠고 이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이 

꽤나 많았던 올 해에도 어머님의 그 당부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엊그제도 약간~ 맛이 간듯한 마죽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몇 술 떠 먹으며 

어머니 생각을 했었네요.
그 당부 말씀은 늘 떠 오르지만 악갑다고 버리지 못하고 챙겨 먹는 미련한 며느리를 

지금 하늘에서 보고 계시는지요.

고향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온  저희들이 못내 죄송하여 해마다 명절이면 
애비의 속 마음에서 흘리는 눈물을 어머니는 보시지요.
어머니의 육신이 누워 계시는 고향은 떠나 왔지만 어머니의 영혼이 돌아가 계시는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오늘도 저희는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살고 가셨던 그 남은 세월만큼을 지나야 할지 알수 없지만
주님 오시기 심히 가까운 이때에 이젠 저희도 머지않아 돌아가 뵈올 그 날이 올것이기에
아직도 해마다 뜨거운 여름이 오면 어머니 당부하셨던 그 말씀 새기면서 
어머니가 애틋함으로 아버님께 사모함의 연애 편지를 쓰시던 그 마음으로
저희도 열심히 사랑하며 살다가 가겠습니다.

머리채  잡아 끌며 핍박하던 죄를 회개했노라고

이젠 용서받고 하나님께 갈수 있을것 같다고

마지막 남은 목숨을 선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늘 가슴에 새기고
더 잘 해드리지 못했던 불효한 제 마음을 스스로 꾸짖으며 

어머니가 살다가신 그 길을 저도 갑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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