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에서 "무" 로 돌아 가는 길
내 생애 지나간 시간 어언 사십여년 을 넘어서고 얼굴에 책임져 갈 때 라는 이 나이
에 내게 남겨진 것들......
가끔 책상 정리를 하거나 집안 정리를 하다가 귀찮아 지거나 복잡하다고 여겨질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낄 때 가 있다.
책, 옷가지, 그릇과 가구들, 잡동사니 등 등.........언제인가 꼭 필요해서 장만했었거
나 구하여 두었을 이 수 많은 것들이 모이고 쌓여 이제는 내게 스트레스거리가 되고
버거운 짐이 되어 눈흘김이 되고 있는 것들!
그동안 참 무던히도 애쓰며 열심히 살아왔건만 지난 IMF 한파의 된서리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바야흐로 이제 우린 우리가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훌훌 털고 빈 손
으로 나서야 할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피땀흘려 가꾸어 왔던 넓은 과수원, 농장, 집안 마당, 정원 구석구석 돌 하나 꽃나무
한 그루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련만 허공의 바람같이 다 날아
가고 우리 몸뚱이 또한 날아가라 한다.
땀 과 집!
그 껍데기만 남겨두고 그 속에 어우러지고 뒤섞여 있던 수 많은 물체들만 알맹이들
이라도 가지고 떠나야만 하련만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도 이제 그것은 우리의 육신보
다 더 버거운 짐이 되어 우리 발목을 붙들고 있을 뿐...........
가져다 놓아 둘 자리 또한 없다.
"네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고 아브라함에게 명령
하시던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라면 기쁘게 떠나가리라.
그동안 너무 많이 갖고 살고 있다고 느끼던 그 더부룩한 마음까지도 다 내려 놓고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우리의 가나안을 향해 떠나고 싶다.
내 삶이 끝날 때까지 내게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면 아니, 내가 갖고 있기엔 내게 합당
치 못한 것이라면 그 무엇 어느 것에도 마음 남겨두지 말고 훌 훌 버리고 유 에서 무
로 돌아가리라.
언제 어디서라도 시작은 다시 할 수 있다.
또 다른 수 많은 잡동사니들이랑은 더 만들지 말고 꼭 필요한 만큼만 갖고서도 풍족
한 마음일 수 있다.
작은 몸뚱이 누일 몇 평의 초가삼간 하나와 오이, 고추, 가지, 심어 키워낼 몇뼘의
흙살과 싸리문 두르고 능소화타래 늘어뜨려 둘 울타리 몇 자만 되면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 되어 그동안 무 에서 유 를 일구어 내려고 바둥거렸던 그 모든 욕심과 미련에
서 떨어져 나가고 싶다.
수 많은 생각의 어지러움속에서도 그저 뒤채임 속에서도 놓여나서 나 자신만저도
아무 곳에도 없는 무로 돌아가 자유롭고 싶어라.
그러나 아직도 다 하지 못한 숙제들이 우리를 붙들고 아직 그 무엇들이 여기 남겨
져 있다고 아우성 친다.
아우성 친다.
2001년 창녕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