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이야기.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따뜻하여 꽃샘 추위도 없이 지나가 봄꽃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해마다 목련꽃이 피고나면 시누이 심술같은 얼음장 추위가 밤새 다녀가 황달 걸린 병자마냥 누렇게 시들어 버린 꽃잎을 달고 못다 핀 꽃 한송이로 봄맞이 하는 마음을 시리게만 하더니 매화, 개나리, 목련, 진달래 등 서로들 제 잘난 자태를 한껏 뽐내며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그 옛날 꽃같은 새 각시로 남편을 따라 이 곳 창녕으로 첫 발을 디딘것이 엊그제 같으련만 어느덧 이십 여년이 훌쩍 넘어섰다.
내가 시집올 때는 유월이어서 온 들판에 양파들이 목이 똑똑 부러진 채 널부러져 누워 있었다.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창녕이란 곳은 한번도 와 볼일이 없었던지라 땅밑에 토실토실한 양파 알을 숨겨 놓은 줄도 모르고 내 눈에는 온 천지에 대파들이 목이 잘려서 쓰러진 줄로만 알고 옆에 있는 신랑한테
"아이구!~ 저 일을 우야노. 파들이 다 죽었습니더예. 큰일이지예?"
하고 사뭇 걱정스런 얼굴로 탄식을하니 남편이 얼마나 파안대소를 하며 웃던지......
파밭이 아니라 양파밭이란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도시 사람들이 농촌에 와서 벼 이삭을 보고 쌀 나무라고 한다더니 그 짝이었다.
창녕의 주산지 작물이 양념류인 양파 마늘 고추 인지라 그 후로도 지금껏 봄이면
모가지가 똑똑 분질러진 양파들이 땅 속에서 제 살을 찌우느라 온 들판에 그득하다.
십년이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는데 이십년 전의 창녕과 지금의 창녕은 무엇이 얼마나 변해져 있는것일까 하는 생각이 요즘 가끔 들고는 한다.
이상하게도 이 곳은 대구와 마산의 중간쯤 되는 지역이어서인지 여느 도시 지역의 발전상과 비교해볼 때 창녕은 그다지 많은 변화를 이룬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창녕에 물이 많지 않은 이유 때문이라고도 했다.
원래 옛날 농경시대 때 부터 인간들이란 집단은 물을 따라서 이동해 가며 삶의 터전을 이루고 발전해 갔다.
창녕은 물의 기운보다는 그 옛날 화산이 폭발했던 화왕산이 뿜어 내는 불의 기운이 더 많다.
창녕지역은 늘 물이 부족하다.
지난 해는 밀양 댐에서 수원을 끌어오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제 2의 경주라고 할만큼 가야 유적지가 많은 이곳은 대도시가 우후죽순 처럼 뽑아 올려놓는 고층 아파트들과 빌딩숲들이 이루어 놓는 숨막히는 발전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순응하며 고요하게 표 없이 변화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다른 그 어느곳보다 유적지가 많다.
신라진흥왕척경비, 술정리동삼층석탑, 관룡사, 석빙고, 왕릉, 박물관, 등 봄 가을이면 이런곳을 견학하고자 대형버스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들이 붐비는 모습을 흔히 볼 수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눈에 뜨이게 달라져 보이는 모습이 있다면 도로들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햇빛을 가릴 정도의 빌등들은 아니어도 노인 복지회관, 여성회관, 청소년문화회관, 등 복지문화시설과 공설 운동장 등도 이십년 전에는 없던 모습이다.
처음 시집오던 날 시댁으로 가는 길의 도로는 울퉁 불퉁한 돌맹이들이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던 좁은 비포장 자갈길이었다.
아마 누군가 이십 년 전쯤 이곳을 와보고 지금 다시 와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길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헤매고 다니리라는 생각이 시원하게 넓어진 4차선 도로를 달릴 때마다 들곤 한다.
요즘은 석빙고 주변과 삼층석탑 주변도 옛날 집들을 정리하고 확장을 해나가고 있어서 또 다른 모습의조용한 변화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말없이 묵묵히 있는 자리에서 소리 없이도 큰 변화를 이루어 내고있는 모습이 있다면 아마 화왕산 일 것이다.
사계절을 갖가지의 얼굴로 전국의 산사람들을 끌어 당기고 있는 그는 오늘도 봄이 몸살 하는 듯한 모습으로 진달래 꽃을 산허리에 두르고 우리를 유혹한다.
그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하얀 억새꽃으로 쓰고있던 제 머리를 갈대제의 이름으로 훨훨 다 태우고 참아왔던 제 속의 뜨거운 용솟음의 기운을 그때서야 활화산의 몸짓으로 드러낸다.
불의 기운으로 열정을 숨기고 있는게 화왕산이라면 물의 기운으로 감싸안고 말없이 생명으로 보듬어 안고 있는 그녀는 우포이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작은 미물들과 풀꽃들, 날짐승들, 억만년을 그 자리에서 솟아 올랐다 사라지며 오만 가지 모양으로 오고 간, 사람의 언어로는 이름붙이지 못할 수 많은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들!
올해에는 그 모습을 토해내고 싶어하는 또 하나의 큰 행사가 있다.
바로 ' 창녕사람들과문학' 이라는 주제로 창녕문인협회에서 주관하여 5월15일~16일 양일간 개최되는 제 2회 "우포생태문학제" 이다.
문화예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문학을 통해 창녕을 , 또한 우포를 널리 알릴 수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또 다른 한 생명의 움직임이다.
'학생백일장' 을 비롯하여 '생태시의현장' 이라는 주제로 학자들의 토론과 '일반부3행시 백일장' '창녕농요가창대회' '우포생태답사' '문호장단오굿' 등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다.
새벽 안개 속에 아련히 밝아오는 우포에는 분명히 생명의 기운이 있다.
이 우포에 자신을 던지며 온 몸으로 부딪혀 살아가는 문우가 한 사람 있다.
그녀는 자칭 자신을 "우미녀" 라고 불러달라고 주문한다.
"우미녀"
풀어보면 우포에 미친 여자 라는 뜻이다.
그만큼 그녀는우포를 사랑한다.
마치 애인을 연모하듯 연인을 사모하듯 그녀는 우포에 정말 미쳐있는 사람이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우포에 가까이 다가가 살기위해 우포를 향해 끝없이 사랑의 손짓을 보낸다.
우포에 비가오면 비오는대로 눈오면 눈오는 대로 아침안개 자욱이 자신을 가리려하면 더한 그리움으로 조금이라도 더 우포에 가까이 다가가려 안타까워 한다.
아무리 바쁜일이 있어도 행여 누가 우포를 보고싶다고 짐짓 말이라도 흘리면 만사를 제쳐두고 그 사람과 기꺼이 동행해주며, 뜨거운 커피까지도 챙겨들고 혹시 아침굶은 청설모가 길가에 나와 있을까봐 땅콩 한 줌 주머니에 넣고 우포로 달려간다.
창녕은 그렇게 자기를 사랑한이 들에게 대도시의 야단스런 모습으로 치장해 가는 발전이 아니라 화왕산 같이 우포같이 또한 그 모두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같이 알 듯 모을 듯 변해온 것 같다.
화왕산은 요즘 주말이면 산을 사랑하는 이들의 일일 산행 코스로서 자신을 내어주고 "허준" :다모" "상도" "대장금" 등 영화촬영지로도 창녕의 얼굴 노릇을 톡톡히 한다.
시원하게 흘러가는 물줄기는 없을지라도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넓은 도로를 보며 아마 앞으로도 창녕은 다소곳한 모습으로 속살이 차오르며 변신해 갈 것이라고 여겨진다.
숨 가쁘게 급히 차 오르는 살은 기어이 트기 마련.
이십 년 전 생전 처음 와본 이땅에서 나는 그 동안 참 많은 일들을 겪으며 보내왔지만 한 촌부의 아내로서 살아오며 얼마전 시어머님을 하늘로 보내 드리고 , 앞 마당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무심히 앉아 생각해보니 이 가문에서 나의 가장 큰 숙제는 무사히 마쳤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땅에서 얻은 또 한분들의 부모를 이 땅에 고이 묻고 이 땅에서 얻은 아들 하나 딸 하나도 건강하게 잘 키워내고 ,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오고 있는 그 중간에서 나는 더할 것도 없고 덜 할 것도 없는 평안으로 하루를 마치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비록 땅을 일구며 지켜낸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한 사람씩 다 떠나보낸 이땅에서 이십 년전의 그 사람과 , 내 새끼들이 한 사람씩 더 붙여 다시 돌아올 또 한번의 인연들을 엮을 꿈을 꾸며 조용히 기다린다.
더디게 이루어 가는 발전일지라도 뒤로 가지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창녕처럼 꼭 같은 모습으로 내가 지금 이땅에 서 있다.
언젠가 나도 돌아가 지친 육신 누일 이땅에.........
2004년 창녕문학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