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없던 팔을 만드신 하나님의 치유 _James Maloney
없던 팔을 만드신 하나님의 치유
나(James Maloney)는 팀원들을 데리고 인도의 격리된 정글에 살고 있는 부족민들을 위한 봉사사역을 나가곤 하였다. 그 지역들은 어찌나 외딴 곳이었는지, 그 곳의 부족민들은 이제껏 백인들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그곳은 그런 데였다. 언젠가 한번은 이 사역여행에 어느 귀한 나매가 동참한 적이 있었다. 루터교 배경을 가지고 있던 그 자매의 이름은 앨마였다. 다음은 그녀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다.
우리는 인도의 북부중앙 지역 어딘가에 있었다(그것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를지도 모른다. 아마 지도를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는 지역인 듯하다.) 당시 우리가 전파하고 있던 이 예수에 관한 메시지를 듣기 위해, 수많은 작은 부족에 속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주님은 그들에게 은혜롭게 그분 자신을 계시해주셨다. 그들 중 대부분이 구원계획에 관해서는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당시 몇 가지 엄청난 기적과 구원의 사건들을 목격하였다. 부흥집회가 진행되던 기간 동안 밤이면 밤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그러던 어느 특별한 밤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줄지어 서 있는 인디언들에게 기도해주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기도를 받기 위해 팔을 펼치고 서 있었다. 나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온갖 형태의 질병, 아픔, 허약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었다. 그것에서 나는 매우 강력한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모든 영광과 존귀를 주님께 올려드린다. 신체적 불구가 치유되었고, 꼬부라진 뼈들이 곧게 펴졌다. 못 보던 눈이 보게 되었고, 못 듣던 귀가 열렸다. 주님께서 수많은 이들을 하나하나 만져주시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굉장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새 한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가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는 굳이 분별의 은사를 동원하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심지어 통역사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는 팔이 없었다. ‘팔이 없다’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팔이 없다’는 뜻이다. 오그라든 팔도 아니고, 불구가 된 팔도 아니고, 심하게 훼손된 팔도 아니었다. 그냥 아예 팔이 없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혹시나 팔이 잘못된 위치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닌가하여 그의 등 쪽을 확인해보기까지 했다. 그래도 없었다. 팔이 완전히 없었다. 어깨는 있었는데, 겨드랑이에 손이 달려 있었다. 손도 달랑 하나였다. 그는 나를 보며 하나밖에 없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팔이 없는 채로 태어난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손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손을 흔들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팔은 없었다.
한편, 앨마는 완전히 질려 있었다. 그녀를 비롯한 우리 팀원들은 앞으로 몰려나오는 수백 명의 인디언들을 위해 나 혼자서 일일이 기도를 해준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모든 팀원을 함께 모이게 한 다음, 다시 그들을 사람들 사이사이로 파송했다. 능력전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들을 에이즈와 암과 기타 그보다 훨씬 더 처참한 질병들을 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로 무작위로 투입시키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첫날 밤, 사랑스런 앨마의 앞에 선 사람은 한센 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 그녀는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표현해서 기겁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녀의 확신은 거의 제로수준에 가까웠다. 집회가 끝나고 난 후, 그녀는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짐 형제님, 저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인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어요. 제가 인도에 올 때는 찬송을 좀 해서 목회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 일을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어요. 그러니까 내일 밤에 형제님이 아픈 사람들을 불러 세우실 때, 저는 저쪽, 저 강대상 뒤로 가서 형제님을 위해 중보 할게요. 제발 제 이름을 불러서 사람들에게 안수하라고 말씀하지는 마세요.”
물론 나도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서 사역하는 이들이 믿음이나 확신도 없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단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러지요, 앨마 자매님. 괜찮습니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여러분이 나를 의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기 전에 말해두겠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누구를 위해서든 기도해달라는 요청을 하지 말아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존중해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팔 없는 이 남자가 서 있다. 기억하는가?
그는 두 팔이 아예 없다. 방금 전까지 나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라고 설득시켰다. 또한 그분의 이름은 바로 예수시며,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아픈 사람들을 모두 데려오기만 하면 반드시 치유 받을 것이라고 말해놓은 터였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사역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팔 없는 이 남자가 내 앞에 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내가 알고 있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보았다. 이 남자를 위해 영어로도 기도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축사도 하고, 선포도 하였다. 내가 알고 있던 치유에 관한 온갖 성경구절들이 입술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한번은 흔들거리는 그 남자의 손을 확 잡아당겨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 그는 여전히 팔이 없는 채로 서 있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빛의 나라와 어둠의 나라가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순간 엄청남 압박감이 느껴졌다.
몇 분가량이 지난 후에, 마침내 더 이상 녹초가 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을 중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이 사람이 치유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를 앨마에게 맡겨라.’
‘예 좋-습니다!’
“오, 앨마? 앨마, 여기로 좀 와보세요.”
앨마는 강대상 뒤에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 강렬하게 방언기도를 드리던 중이었다. 그녀의 열렬한 기도소리를 당신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주님께서 자신을 부르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혹 돌렸기 때문이다. “네? 뭐라고요?”
“자, 앨마,” 나는 그녀의 관심을 좀 더 현실세계로 끌어당겨가면서 말하였다. “어젯밤에 그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사역을 해주기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신 걸 기억합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있는 이 남자 분을 위해 당신이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녀의 두 눈이 그 남자를 향해 쏠렸다. 그런데 그에게는 팔이 없었다. 맙소사! 누군가를 어쩜 저렇게 노려볼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끓어오르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아무에게도 기도해주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당신에게 이미 드렸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이 남자를 제게 넘겨주시다니요. 이 문제에 관해서 나중에 좀 다뤄보아야겠어요, 짐!’
그러나 그녀는 팔이 없는 그 남자가 있는 데로 걸어갔다. 비참한 심경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여러분 중에 모르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말해두겠는데, 인도의 날씨는 매우 덥고 밤 9시에도 습도가 90퍼센트나 된다. 이런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때로는 2-3시간가량이나 소요되는 길을 걸어와야 하는 어머니들과 자녀들이 약 500명 정도나 되었다. 그들은 부흥회 기간 내내, 이틀이나 사흘, 나흘 동안 계속해서 집회 장소에 머물렀다. 우리는 그들을 더위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부흥회의 주최자들(그 지역 출신의 목회자들)은 임시적으로 서까래로 큰 천막을 세운 뒤, 지붕을 짚으로 덮었다.
누군가가 서까래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백열전구를 매달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등이 있으면 어두워진 후에도 집회가 차질 없이 진행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인디언들이 비교적 키가 작은 사람들이라는 데 있었다. 내 키는 약 2미터다. 따라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백열전구는 바로 내 코 높이에 와 닿았다. 보통 강단 위에 서면 내 머리가 서까래 천장에 부딪치곤 했다.
당신은 이 백열전구들 주위에 모여든 벌레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를 악문 채로 말을 하는 법까지 터득했다. 왜냐하면 인도에서는 더위가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벌레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오, 맙소사! 벌레들의 모양은 정말 기상천외하였다! 마치 아주 조그만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설교시간에 내가 무엇을 삼키고 있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벌레 문제와는 별도로, 우리는 그곳 천막 아래 더러운 바닥 위에서, 아이들과 어머니들에게 음식을 공급해주어야 했다. 인도에서는 아기들이 음식물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반드시 쥐들이 몰려온다. 인도에서는 쥐들이 고양이들을 잡아먹는다. 당신은 내 말이 농담처럼 들리는가?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그것들은 잡종이다. 다소 지나친 생각이지만 나는 인도 정부가 생물학적 무기로 사용하려고 그것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것들은 서까래에 붙어 있다가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음식위로 주기적으로 뛰어내렸다. 우리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하루 종일 쥐들을 때려잡아 쫓아내도록 해야 했다. 그 쥐들은 성질이 고약하기로 악명이 높았으므로 사람들에게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정말 사악한 작은 괴물들이다.
아무튼, 내가 잠시 옆길로 샜다. 그리하여 그곳에는 서까래와 짚으로 된 이 천막이 있었다. 이 천막 아래에 지금 앨마와 그 팔 없는 남자가 서 있다.
그녀는 그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눈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처참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그 남자의 한쪽 어깨 위에 털썩 올려놓았다. 그의 어깨는 더할 나위 없이 정상적이었다. 그녀는 그의 다른 한쪽 어깨에서 흔들리고 있는 손에는 감히 시선조차 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 예-예’라고 말하던 순간에(그녀는 시종일관 ‘예수님’이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말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 남자의 어깨에 붙어 있던 손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손은 마치 제트연료로 동력을 갖춘 구형포탄이 공중을 날아가는 것처럼, 움푹 들어간 어깨 부위로부터 점점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의 어깨에는 어느새 팔이 붙어 있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당시 앨마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만일 그녀가 눈을 뜨고 있었더라면, 이것이 그다지 웃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고. 그 사이 새롭게 생긴 그 남자의 팔에 붙어 있던 손이 사랑스런 앨마의 정수리에 탁 하고 놓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얼른 그의 손을 자신의 머리에서 떼어냈다. 그녀는 그것이 쥐라고 생각했다. 서까래에 있던 쥐가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큰소리를 지르며 발끝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머리카락을 격렬하게 쓸어내렸다. 그러는 동안 새로 생긴 그 남자의 팔은 옆구리 부위에서 마치 원숭이 팔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근육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남자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자신의 새로운 팔로 인해 누군가의 기분이 상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마침내 앨마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녀 앞에는 그 남자가 완벽하게 회복된 팔을 흔들거리며 서 있었다. 그녀는 충격적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가는 다시금 그 남자의 팔을 쳐다보고 또 한 번 나를 바라보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말로니 형제님! 오, 주님! 효과가 있었어요! 정말로 효과가 있었다니까요!”
그 순간 이후부터 나는 도저히 앨마를 제지할 수가 없었다. 그 사역 여행에서 내가 강단초청을 할 때마다 그녀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이렇게 말했다. “실례합니다, 말로니 형제님.” 그녀는 내 앞쪽으로 새치기해서 들어와서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신체적인 장애가 있거나 팔다리가 손상된 사람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통역사도 필요 없었다.
그녀는 각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지적해냈다. “당신, 그리고 당신, 그리고 맞아요. 당신.” 그녀는 매일 밤 20-30명 정도를 찾아냈다.
내가 아는 한 그녀의 성공률은 100퍼센트였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내가 이 간증을 소개한 이유는, 한계의 저주, 종교성의 저주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것에 관해서는 다음 단락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사실상 이 한계의 저주는 점술의 저주와 아주 유사하다. 주님의 파르헤지아(담대함) 안에서 성령님은 사도적인 사람들을 부르시어 이러한 저주를 반전시켜 놓을 수 있는 담대함이라는 돌파의 기름부음을 풀어놓게 하신다.
James Maloney. 「The Dancing Hand of God. 춤추는 하나님의 손」. 임정아 옮김. (서울: 순전한 나드. 2014). 제3권. pp.120-127.